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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바르낙의 책상: 일하던 한 사람의 정신을 복원하다2026-10-01 11:06
카테고리사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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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 전문 매체 Macfilos에 흥미로운 글이 올라왔습니다. 맨체스터 라이카 스토어의 데이비드 스티븐스(David Stephens)가 오스카 바르낙(Oskar Barnack)의 1934년 작업대를 2년째 복원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글쓴이는 Amitava “Chats” Chatterjee입니다.

은퇴한 기술자의 상자들, 유명한 1934년의 사진 한 장, 그리고 300유로짜리 전화기. 데이비드 스티븐스의 2년에 걸친 수집 여정입니다. 스무 가지 물건을 모았지만 질문 하나는 남아 있습니다. 이 책상은 언제 완성될까요?

복원 중인 바르낙의 책상데이비드 스티븐스가 복원 중인 바르낙의 책상

앨런 클라크(Alan Clark)는 영국 라이카에서 약 40년을 일했습니다. 처음에는 카메라 기술자로, 나중에는 작업장 관리자로 근무했습니다. 그는 무엇 하나 버리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루턴(Luton)의 집에 있던 작업실을 정리할 때가 되자, 앨런은 라이카 스토어 맨체스터의 데이비드 스티븐스에게 그 내용물을 가져가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쓰레기통 직전에서 건져 낸 물건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데이비드는 마다할 수 없었습니다. 그 상자들에서 나온 것들이 그를 2년에 걸친 여정, 즉 사진사에서 가장 유명한 작업 공간 중 하나인 오스카 바르낙의 책상을 재현하는 일로 이끌었습니다.

데이비드는 무엇이 나올지 전혀 몰랐습니다. 상자마다 전쟁 이전 베츨라(Wetzlar) 공장에서 쓰던 수천 점의 예비 부품과 공구, 오래전에 잊힌 액세서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앨런은 1960년대 초 라이츠의 황금기에 런던 모티머 스트리트(Mortimer Street) 사무소에서 일을 시작했고, 2005년 밀턴 케인스(Milton Keynes)의 라이카에서 은퇴했습니다. 물건을 모아 두는 그의 습관이 없었다면 거의 모두 사라졌을 것입니다. 클라크 씨, 정말 감사합니다. 이것은 누군가 발굴한 라이카 컬렉션 가운데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될지도 모릅니다.

마스터플랜은 없었다

마스터플랜도, 체크리스트도, 정해 둔 결과도 없었습니다. 다만 데이비드는 책상에 앉아 있는 오스카 바르낙의 유명한 사진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고, 거기서 생각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그 사진은 단순히 거장이 작업대에 있는 모습이 아니라 ‘사고의 초상’이었습니다. 도구들, 돋보기, 어수선해 보이는 가운데 흐르는 조용한 질서. 손과 눈으로 문제를 풀던 사람의 도구들이었습니다.

바르낙은 1911년 베츨라의 에른스트 라이츠에 입사했고, 1913년경 지금 ‘Ur-Leica’로 불리는 시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영화용 35mm 필름을 스틸 사진에 맞게 바꾸고 24×36mm 화면 크기로 정함으로써 현대 컴팩트 카메라의 토대를 놓았습니다. 그의 지도 원칙은 흔히 “작은 네거티브 – 큰 사진(Small negative – big picture)”으로 요약됩니다. 카메라를 휴대할 수 있게 만들었고, 순간의 장면을 포착할 수 있게 했습니다.

하우저토어베르크베츨라의 옛 라이츠 공장 하우저토어베르크(Hausertorwerk)의 흑백 사진 © Bill Rosauer 2025

1934년 3월 19일 목요일(성 요셉 축일), 바르낙은 베츨라 란(Lahn) 강변에 있는 라이츠 건물 하우저토어베르크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 건물은 에른스트 라이츠 2세가 사업 확장을 위해 1921년에 사들인 곳입니다. 라이카에게는 중요한 해였습니다. IIIa가 개발 중이었고, 바르낙은 이미 사진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엔지니어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1934년 책상에 앉은 오스카 바르낙1934년 책상에 앉은 오스카 바르낙 © Bill Rosauer 2025

렌즈 뒤의 사람

LSI 회원 앨런 스토크스(Alan Stokes)의 조사에 따르면, 이 사진은 에른스트 라이츠 2세의 요청으로 율리우스 후이스겐(Julius Huisgen)이 찍었습니다. 에밀 G. 켈러(Emil G Keller)는 Viewfinder 28-1에서 이 책상이 하우저토어베르크 2층에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율리우스는 삼각대 위에 50mm 렌즈와 Perutz 필름을 쓰고 플래시 전구로 장면을 밝혔습니다. 사진가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독자는 Viewfinder 11-1의 7쪽부터를 보시면 됩니다. 덧붙이면 율리우스는 당시 LHSA로 불리던 협회의 1977년 콘퍼런스에 초청 연사로 나왔습니다. 이 사진이 데이비드의 영감이 되었습니다. 그의 첫 질문은 단순했습니다. 이 물건들을 찾을 수 있을까? 복제품이나 ‘비슷한 것’이 아니라, 같은 시대와 성격과 용도를 가진 같은 종류의 물건 말입니다.

첫 번째 물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전화기였습니다. 사진 속에서 전화기는 마치 미안해하듯 놓여 있지만 분명히 거기 있습니다. 한동안 찾아다닌 끝에 데이비드는 이베이에서 똑같은 모델을 발견했습니다. 가격은 300유로. 잠시 망설였지만 그는 샀습니다. 그 순간 이 프로젝트가 조용히 자신을 붙들었다고 그는 말합니다. 왜인지도 모르는 채 “자, 해 보자”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결말을 정하지 않았다

데이비드는 완성된 모습이 어떨지 한 번도 정하지 않았습니다. 팔 수도 있고, 간직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모든 물건을 제자리에 고정해 책상을 다시는 건드릴 수 없게, 시간 속에 멈춘 고고학적 순간으로 영구히 조립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처음에 무엇이 어디에 놓여 있었는지 알아내는 과제 그 자체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LSI 런던 모임에서 발표하는 데이비드 스티븐스2026년 LSI 런던 모임에서 발표하는 라이카 스토어 맨체스터의 데이비드 스티븐스. Leica Q3 © Jon Cheffings 2026

만만치 않은 도전

도전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어떤 것은 간단했습니다. 데이비드는 잉크병을 직접 만들었고, 책상 위 카메라와 맞는 카메라를 구했으며, 라이츠 이름이 찍힌 병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매물과 개인 컬렉션에서 나왔습니다. 조금씩 램프가 나타났고, 전화기가 자리를 잡았으며, 책상 자체가 정체성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물건도 있었습니다.

절제된 추측

렌즈가 나왔는데, 진짜도 있고 모형도 있었습니다. 라이카 I의 압판(pressure plate)도 나왔습니다. 필름용 구멍이 없고 바디 안에 들어가는 원래의 원형 버전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버전도 나왔습니다. 라이카 역사의 그 시점에 그 책상에 놓여 있던 것은 어느 쪽일까요? 확정적인 답은 없었고, 정보에 기반한 판단만 있었습니다.

데이비드는 이 과정을 ‘절제된 추측(disciplined guesswork)’이라고 부릅니다. 조사 위에 직관을 쌓되, 카탈로그의 경직성이 아니라 현업 엔지니어의 논리를 따르는 방식입니다. 이는 바르낙 자신의 작업 방식과도 닮았습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바르낙은 이론적 계획보다 실험과 반복적인 시제품 제작에 의존한 실용적인 엔지니어였고, 필름 종류와 셔터 메커니즘, 광학 성능을 실제 환경에서 시험하며 라이츠 작업장에서 초기 라이카 시제품을 다듬었습니다. 이것은 과학수사식 복원이 아니라 공감이었습니다.

인터넷이라는 자료실

데이비드가 어떤 개별 물건보다 더 놀란 점은 이런 자료가 아직도 이렇게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경매 사이트, 전문 포럼, 잊힌 재고 목록에 흩어져 있던 것은 한 세기 전 어느 노동의 조각들이었습니다. 실험의 도구, 반복 작업의 부산물, 움직이던 정신의 물리적 증거였습니다.

복원 중인 바르낙의 작업대복원된 바르낙의 작업대 © David Stephens 2026

역설적이게도 가장 어려웠던 것은 첫 번째 물건이었습니다. 하나를 찾고 나자 나머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하나를 얻을 때마다 다음 물건을 보는 눈이 날카로워졌습니다. 추진력이 붙었습니다. 책상은 수집품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감’이 되었습니다.

서른 가지 중 스무 가지

데이비드의 계산으로는 그 유명한 사진에 약 30점의 물건이 보이고, 지금까지 모은 것은 약 20점입니다. 아래에서는 먼저 2026년 3월 시점의 책상을 보여 드리고, 이어서 역사적으로 특히 흥미로운 일곱 가지를 자세히 살펴봅니다.

전화기

전화기는 바르낙의 왼쪽 팔뚝 바로 뒤에 두드러지게 놓여 있으며, 찾는 데 오랜 수색이 필요했습니다. 데이비드는 결국 독일의 한 판매자에게서 똑같은 모델을 구했습니다. 1920년대 후반의 지멘스 운트 할스케(Siemens & Halske) ZB.06입니다. 1847년에 설립된 지멘스 운트 할스케는 1920년대에 유럽 최고 수준의 전기 공학 기업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회사의 전화기는 베츨라의 라이츠 같은 정밀 공장을 포함해 산업 현장에서 널리 쓰였습니다. 이런 전화기는 아마 공장 내부 교환대에 연결되어, 광학 설계·가공·조립 부서의 기술자들이 서로 연락하는 데 쓰였을 것입니다.

지멘스 운트 할스케 ZB.06 전화기지멘스 운트 할스케 ZB.06 전화기 © David Stephens 2026

핀셋

낡은 황동 핀셋닳은 황동 핀셋 © David Stephens 2026

핀셋은 라이카 안쪽의 수백 개 작은 나사를 집는 데 안성맞춤입니다. 구하기 쉬울 것 같고, 실제로 그랬습니다. 완벽한 한 쌍이 공구로 가득한 서랍 뒤쪽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냥 핀셋이 아니라 “AA”가 각인된, 아름답게 낡은 황동 핀셋입니다. 정밀 핀셋은 라이츠 작업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도구였습니다. 조립이란 아주 빡빡한 공차 속에서 작은 나사와 스프링, 셔터 부품을 다루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핀셋 확대삼각형 두 개 표식이 보이는 황동 핀셋 확대 © David Stephens 2026

잉크 압지

이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램프와 잉크병 뒤에 반쯤 가려져 책상 뒤쪽 구석에 놓인 물건은 대체 무엇일까요? 단서는 잉크병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시의 로커(rocker)식 잉크 압지였습니다. 어떤 것보다 찾는 데 오래 걸렸고, 결국 프랑스의 Etsy에서 라이카 전설 속 자기 자리를 끈기 있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볼펜이 널리 퍼지기 전에는 엔지니어들이 만년필을 썼고, 압지는 기술 메모와 스케치, 계산을 말리는 데 쓰였습니다.

잉크 압지잉크 압지 © David Stephens 2026

펫트(Fett) 캔

앨런의 상자들 중에는 이런 금속 통이 다섯 개 있었는데, 모두 헬리코이드 등에 바르는 점도가 다른 그리스(독일어로 ‘Fett’)가 들어 있었습니다. 냄새가 꽤 강해서, 이 캔은 단단히 밀봉한 채 책상 한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윤활은 라이카 설계에서 핵심이었습니다. 정밀하게 가공된 황동 헬리코이드와 셔터 어셈블리는 다양한 온도에서 매끄러운 초점 이동과 안정적인 셔터 작동을 내기 위해 신중하게 배합된 그리스가 필요했습니다. 여러분의 렌즈가 녹은 버터 위를 미끄러지듯 돌아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펫트 캔50g 'Fett' 캔 © David Stephens 2026

편지

라이츠에서 편지는 엔지니어링 업무에서 큰 역할을 했습니다. 1930년대의 빠른 카메라 개발 과정에서 기술자들은 시제품 시험과 부품 공급업체, 기계적 공차에 대해 정기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안타깝게도 바르낙의 책상 위 편지는 판독할 수 없습니다. 읽으려면 페터 칼베(Peter Karbe)의 렌즈와 고해상도 센서가 필요했을 텐데, 1934년에는 둘 다 없었습니다. 그래서 데이비드는 독일어가 인쇄된 종이를 구해 접고 구겨서 책상 위의 서류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편지편지 © David Stephens 2026

라이카 IIIa

앨런 클라크의 작업실 상자들 중 하나에서 또 하나의 보물이 나왔는데, 재미있는 우연입니다. 바르낙의 책상 사진이 찍힌 1934년에는 IIIa가 개발 중이었습니다. 1935년에 상용화된 IIIa는 최고 셔터 속도 1/1000초를 처음 갖춘 라이카로, 동체 촬영과 밝은 대낮 촬영에 큰 진전이었습니다. 또한 1936년 1월 바르낙이 세상을 떠나기 전, 그의 직접 감독 아래 개발된 마지막 모델들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렌즈 없는 초기 라이카 IIIa렌즈를 달지 않은 낡은 초기 라이카 IIIa 레인지파인더 바디 © David Stephens 2026

PIX 연필

LSI 저널 Viewfinder의 편집자 빌 로자우어(Bill Rosauer)는 라이츠 가문과 바르낙, 막스 베렉(Max Berek), 그리고 라이카의 역사를 깊이 연구해 왔습니다. 빌에 따르면 바르낙은 잉크 펜을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그가 가진 바르낙의 메모 대부분은 연필, 정확히는 엔지니어가 쓰는 제대로 된 샤프(Bleistift)로 쓰여 있습니다. 왕성한 발명가였던 바르낙은 몽블랑이 ‘PIX’라는 이름으로 생산하게 되는 연필까지 직접 설계했습니다. 차이스 시절의 동료와 함께 작업했으며, 독특한 심 공급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전체 이야기는 빌의 Viewfinder 기사와 LSI 블로그 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몽블랑 PIX 샤프검은색 몽블랑 'PIX' 샤프 © Alan Stokes 2026

언제 멈출 것인가

데이비드는 더 보탤 것이 없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가능한 모든 것을 찾아서가 아니라, 책상이 완전하고 균형 잡히고 진실하게 느껴질 때입니다. 그때까지 작업은 계속되며, 완벽이 아니라 존경이 그것을 이끕니다.

바르낙의 책상을 재현하면서 데이비드는 조용히 급진적인 일을 해냈습니다. 초점을 ‘유물로서의 카메라’에서 그 카메라를 가능하게 한 ‘조건’으로 옮긴 것입니다.

화려하지 않은 유물들

도구, 실험, 화려하지 않은 물건들. 이것들이 사진사에서 가장 오래 이어진 혁명 가운데 하나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결국 이것은 물건을 진열한 것이 아닙니다. 애정으로 만든 작업이며, 아이디어가 현실이 되는 과정을 복원하는 일입니다.

이 책상은 어떻게 될까요? 어쩌면 1934년 그대로, 기름때가 묻고 먼지가 앉고 어지러운 상태로 두는 것이 가장 좋을지도 모릅니다. 결과를 중시했을 뿐 절차나 획일성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위대한 발명가의 책상으로 말입니다.

여러 면에서 복원된 이 책상은 역사적 호기심 이상입니다. 라이카를 낳은 작업 환경을 담고 있습니다. 라이카는 사진을 느리고 삼각대에 묶인 작업에서, 삶이 펼쳐지는 대로 기록하는 휴대용 도구로 바꾼 카메라입니다. 라이카는 초기 포토저널리스트와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카메라가 되었고, 현대 시각적 이야기 방식을 만드는 데 일조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아무것도 버리지 못했던 한 은퇴 기술자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글쓴이는 데이비드 스티븐스, 빌 로자우어, 앨런 스토크스, 에드 슈워츠라이히(Ed Schwartzreich)의 도움에 감사를 전했습니다.

글쓴이 Amitava “Chats” Chatterjee는 세계 라이카 커뮤니티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라이카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LSI) 집행위원이자 Viewfinder의 부편집장입니다. 데이비드 스티븐스는 소매와 라이카 아카데미 강좌, 투어, 클래스를 운영하는 라이카 스토어 맨체스터의 대표입니다.

원문: Barnack’s Desk: Reconstructing a mind at work (Macfil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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