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모노크롬에 대한 변명

작성자
dreampop
작성일
2025-04-21 19:45
조회
40451

개인홈에도 올렸던 글이라 편의상 경어는 생략합니다.







내 인생은 사진을 발견하게 된 날부터 변했다. 그것은 자기가 직접 하던 사진현상작업에 나를 데리고 간 한 친구의 덕택이었다. 요술 같은 작업과정, 화공약품들의 냄새, 암실 속에서 훌러내리던 물, 이런 모든 것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금세 나는 같은 일을 해보고 싶었다. (...) 우리 반에는 까르띠에-브레송의 사진집 「결정적인 순간 The decisive moment」을 가진 아주 아름다운 여학생이 있었다. 우리는 둘이 함께 자주 그 책을 들춰보곤 했다. 우리는 그의 생동감과 천재적인 창조성을 좋아했으며, 그의 사진을 좋아했었다. (...) 그 당시 나는 생전 처음으로 그 소녀와 까르띠에-브레송에 대한 사랑에 빠졌다. 나는 그녀 또한 나를 사랑하기를 바랬다. 그래서 나는 까르띠에-브레송의 사진들만큼이나 훌륭한 사진을 만들기 위해 콘탁스 Contax 35밀리를 구입했다. 그러나 내가 만든 사진을 그녀에게 보여주었을 때는 이미 늦은 때였다. 그녀는 이미 영어선생님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까르띠에-브레송하고만 외롭게 남게 되었다.

-Bruce Davidson 









사진을 좋아하나요?


2000년 이전의 사진에 대한 기억은 거의 전무하다.


중학교 수학여행, 집에 있던 자동카메라를 들고가 컬러필름으로 한롤 찍었던 기억

대학생이 되니 과동기들이 단풍과 낙엽 사이에서 사진을 찍자고 해서 예의 자동카메라를 들고 나갔던 기억 정도다.


2000년에 우연히 친구를 따라간 암실은 나를 사로잡았고, 나는 금세 같은 일을 해보고 싶었다.

2001년 복학을 하고 사진동아리에 들어갔다.


무엇이든 금방 질리곤 하는 성격의 내가

이후 20여년을 한가지 취미에 매달리게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동아리에서 직접 필름로더에 감아주던 필름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약품을 사용하던 시절에는 결코 몰랐다.

사진이 이렇게 무시무시하게 돈이 드는 취미인 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경험입니다;;;)








흑백을 좋아하나요?




사진동아리에 있던 사진관련 서적을 있는 대로 읽었고,

그 다음은 도서관에 있는 서적과 사진집들을 보기 시작했다.


사진을 통해 많은 사진가들을 접했다.

까르띠에 브레송, 브루스 데이비드슨, 유진 스미스, 외젠 앗제, 듀안 마이클, 워커 에반스, 다이안 아버스, 마이너 화이트


그리고 밖으로 나가 흑백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현상비+잘각1매 로 주머니를 가법게 했던 컬러 네가와는 달리

직접 현상하고 프린트하는 재미에 빠지게 되었다.

(물론 필름값과 인화지 값도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그렇게 135는 650롤, 120은 210롤 정도의 흑백필름을 쌓아가는 시간들이 쭉 이어졌다.




(2001) Pentax MX, smc 1.4/50, Konica Pan 100






(2004) Nikon F, Nikkor 2/50, ilford HP5+ 400





(2005) Rolleiflex MX-EVS, Xenar 3.5/75, Kodak Tri-X 400





(2007) Toyo View G 4*5, apo-symmar 5.6/150, Fujifilm FP3000B





(2008) Olympus Pen FT, G. Zuiko 1.4/40, Konioca Pan 100





(2009) Leica M3, DR Summicron 2/50, Agfa APX 400





(2009) Pentax 67, SMC 4/45, ilford Delta 100






(2010) Contax G1, Planar 2/45 T*, Rollei Retro 400s





(2011) Pentax MX, smc 2.8/28, Kodak Tri-X 400 (+1 push)





(2013) Fujifilm GA645, Super-EBC Fujinon 4/60, Fuji Acros 100





(2016) Nikon F801S, Nikkor 1.8/50 D, Kentmere Pan 400





(2019) Hasselblad 503CX, Planar 2.8/80 T*, ilford HP5+ 400





(2022) Canon F-1, FD 1.4/50, Agfa APX 400





(2022) Leica M6, Elmarit-M 2.8/28, Kentmere Pan 100
















디지털은 안 좋아하나요?



그렇다, 디지털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게다가 몇 차례 작은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해봤으나 매번 실패의 경험만 남았다.


그러나 매번 현상하는 족족 실패하는 나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

현상과 스캔과 먼지제거가 지겨워지기 시작한 어느날

결국 디지털바디를 하나 손에 넣게 된다.


디지털이라 하더라도 RF 방식 외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마침 겨우 손에 닿는 수준으로 가격이 떨어져 버린 것이다.





(2024) Leica M (typ240), Nokton 1.1/50






(2025) Leica M (typ240), Summicron-C 2/40 + Y2 filter





(2025) Leica M (typ240), Planar 2/50












흑백에 얼마나 진심입니까?




디지털 M을 사용하면서도 계속 나를 괴롭히던 것은 기본이미지가 컬러라는 것이었다.


일단 촬영 후 후면모니터를 흑백으로 확인하는 것은 간단한 설정으로 가능하지만,

작업을 위해 컴퓨터에 옮겨서 열리는 이미지는 컬러였다.


컬러를 찍어서 매번 흑백으로 변환해야 한다.

흑백으로 변환해서 별로거나, 컬러 자체 이미지가 강하면 컬러로 작업한다.

이런 어정쩡함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카메라샵과 장터를 들락거렸고

좀처럼 마음에 드는 녀석을 만나지 못하는게... 아니라

모노크롬 자체가 흔하지 않았고, 섣불리 접근할 만한 가격도 아니었다.


그렇게 조금씩 지쳐가던, 그래서 이제는 포기해야 싶던 금요일 저녁

우연히 그 녀석을 발견하고 말았다.


오로지 빨리 월요일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토,일요일을 보내고

월요일 업무를 어느 정도 마치고 급하게 충무로로 향하게 되었다.


당분간은 부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CCD ID 53

총 촬영컷수 4439컷

어디에도 없는 라이카의 로고

그리고 수광창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가방에 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Leica M Monochrom


2012년 출시, 총 3000대 생산

1800만 화소, ISO 160-10000



이미지출처 : https://www.cambridgeincolour.com



모노크롬 센서에 대한 내용은 워낙 많은 사람들이 상세하게 잘 설명해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종종 들어가 보는 라이카 전문 유투버 분이 모노크롬에 대한 영상에서 이렇게 묻는다.


"얼마나 흑백에 진심이십니까?"


거기에 나는 겨우 이 정도로 대답한다. 

"네, 내 나름대로 진심입니다."

























Summicron 2/50






Color-Skopar 2.2/50






Summicron 2/50






Summicron 2/50






Summicron 2/50






Summicron-C 2/40







Summicron 2/50







Nokton Classic S.C 1.4/35






Solaron-M 2/35






Solaron-M 2/35







Solaron-M 2/35






Solaron-M 2/35






Solaron-M 2/35







Summicron 2/50







Summicron 2/50







Summicron 2/50 + Y2 filter / EV -1 / iso 10000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전체 8

  • 2025-04-22 08:28

    변명이라뇨...ㅎㅎ 예찬이라고 해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정성스러운 글 잘 봤습니다 ^_^


    • 2025-04-23 17:01

      어떻게보면 다운그레이드라서 나름의 명분이랄까요, 변명이 필요했을지 모릅니다.


      • 2025-04-23 17:14

        일단 CCD 모노를 쟁여두시고 추후에 컬러모델로 기추 하시죠! ㅎㅎ


        • 2025-04-23 20:43

          CCD 모노 사용해보니 너무 마음에 들어서 추후에 다른 모노크롬 모델 기추할 예정입니다 ;;;;


          • 2025-04-23 22:58

            와우! 미리 축하드립니다 ㅎㅎㅎ


            • 2025-04-23 23:03

              감사합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 2025-04-22 14:33

    dreampop님을 뵙진 못했지만 사진과 글로 보여주시는 모습은 근사합니다. 멋길 에세이 또 기다리겠습니다.


    • 2025-04-23 17:00

      감사드립니다. 이제 소재가 떨어져서 당분간은... ^^